정선 안도전 마을

정선 안도전 마을

정선 안도전 마을

정선 안도전 마을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도전리 안도전마을

“물나들이 굴굴대는” 아우라지 안동네

남한강과 낙동강의 분수령, 피재를 넘는다.
5월 5일, 태백주재 김부래기자의 지프차를 타고 청옥 두타산 자락의 하장을 지나 임계로 향한다.

정선아라리의 ‘물나들이 굴굴대는’물거품에 발 적시며 가는 길이다.

골골이 쏟아진 물이 어우러지고 골지천과 임계천이 만나 정선 조양강으로 흐르니 남한강의 물머리다.
이쯤에서 도전은 물길을 거슬러 올라야 한다.

털털대던 길 멈추고 도전 아우라지에서 두 손 가득 물을 뜨면 청옥산 자락이 푸르게 담긴다.

물길은 쉼없는데 냇가의 밭은 가뭄이 흉흉해 온통 말랐다.

그 흙먼지 풀썩이는 황토길 끝, 고적대 아래에 안도전이 있다.

고적대와 중봉에서 내려오는 물길쳐 올라 모롱이를 휘돌 때마다 냇가 양편으로 돌담을

두르고 양철지붕을 얹은 키 낮은 집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햇빛 짱짱한 마을은 적막강산인데 아름드리 돌배나무가 하얀꽃을 뭉게뭉게 피우고 길섶으로

고개를 내민 노란 민들레와 치렁치렁 꽃가지를 늘여뜨린 이팝나무가 한창 이야기밥상을 차린다.

집집의 울타리를 에두른 꾀(고야)나무와 복상(복숭아)나무의 하얗고 볼그레족족한 꽃들까지

어울려 온 들녘에 봄 잔치를 벌렸다.

몇 걸음 더 걸으니 돌담 너머에서 우렁우렁 말소리가 들려온다.

탁왈수씨(58세) 집이다.
봉당에 주인장과 앞집에 사는 반장 홍종원씨(64세)가 앉았고 정연근씨(51세)가
노로 엮어 만든 배낭 모양의 망태기, 주루목을 지고 일어선다.

아직 하루해가 제법 실하게 남았는데 소주잔이라도 기울였는지 얼굴들이 불콰하다.
태백대한 석공에 다닌다는 정씨는 연휴를 맞아 부모님도 뵙고 휘휘 산바람이나 쐬려고 들어왔다 한다.
아버지 정덕화씨(71세)는 나무하러 갔다 등걸나무에 치여 허리를 다친 후론 밭일을 못하니

어머니 김장현씨(72세)의 허리가 휜다며 자주 들어와 일손을 돕는다.

탁씨는 멍석에 널어놓은 고비를 뒤적이고 홍씨가 봉당에 뒹구는 플라스틱 병을 들고 막소주를 권한다.
“요샌 밭에 부침이 끝내놓고 한가한 편이래요.”
탁씨네 마당 가득 들어찬 봄햇살이 나른하다. 한켠에 놓여진 벌통을 들락거리는 토종벌들의 잘개짓만 바쁘다.

벌떼가 닝닝거리는 마당에서 구부렁골로 몇 걸음 떼면 5년 전 문을 닫은 도전초등교 내도전분실이다.
예닐곱 평이나 될까, 살림집의 행랑채처럼 허름해도 단정한 차림새다.

겨실 옆댕이에는 선생님 숙소로 사용했을 방이 하나 붙었고 뜨락에는 때가 시커멓게 앉은 신발장이 여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직도 하얀 페인트칠 단정한 도전초등교 내도전분실.

주변엔 온갖 꽃들이 화들짝 피어 또 봄꽃잔치를 벌려도 주인 잃은 분실은 외롭다.

느는 것이라곤 분실닮은 빈집뿐. 오른쪽이 구부렁골이다. 홍종원씨가 몇 골 돌아들며 목청틔워 흥을 내본다.

하지만 겨우내 묵었던 흙과 덩달아 무심한 세월도 갈아엎다보면 굽어가는

어깨에 내려앉은 건 무우말랭이 닮아가는 밭, 가뭄 걱정이다.

이젠 요소비료며 멍석이 들어앉은 교실, 보자기만한 칠판과 곰보처럼 얽고 삐걱이는

책상과 걸상에 묻은 아이들의 손때가 잊혀진 재잘거림을 슬몃 떠올려준다.
거미줄 칭칭 감긴 구석의 책꽂이에는 바른생활, 산수 따위의 책들과 겉이 까만 출석부가 꽂혀있다.

거기엔 심상목이라는 선생님의 이름과 성표, 미영, 효진, 복화라고 붙여진 조무래기들의 이름이 뽀얀 웃음처럼 드러난다.

3학년부터는 도전초등교로 통학을 하고 일이학년만 다녔다는 분실. 89학년도의 전교생은 세 명 뿐이었다.

효진이는 동무가 없어 누나 미영이를 따라오는’청강생’이었다.

아이들은 구부렁골을 타고와 졸졸대며 흐르는, 손바닥만한 유리창을 넘나드는 물소리에 맞춰 책을 읽고,

노는 시간이면 도랑을 건너 황철(백양)나무 두 그루가 그늘을 드리운 큰길가의 운동장으로 달려나갔으리라.

그러나 이제 안도전에 남은 국민학생이라고는 효진이(도전초등교 6학년)뿐이다.

안교원씨가 산에 토종벌 받으러 갈 벌통을 손보고 있다. 봉당에서는 효진이 엄마

남운자씨(왼)가 이젠\’강릉댁네’가 된 효진이 고모 안숙자씨 (가운데), 김영하씨와 오랜만에 만난김에 지난 세월을 끝없이 풀어낸다.

아름드리 황철나무가 선 운동장을 지나면 안도전 부자가 살았다는 장재터다.
감자밭으로 변한 장재터 안쪽은 참배나무, 복숭아나무, 꾀나무가 울타리를 친 탁왈수씨 형님인 탁영길시(74세)집이다.
강릉에서 직장을 다니는 막내딸 금녀씨(25세)가 모처럼 휴가를 얻어 집에 와있다.
마당에 싸릿가지 자국이 죽죽 그어졌을 정도로 비질이 께깨끗하고 부엌이며 방을 슬고 닦는 금녀씨 손길이 바쁘다.

“살다보면 맨날 좋기야 하겠냐만”

탁씨의 조부는 새신랑 때 동해에서 백복형을 넘어 장아리로 들어가 화전을 일군 개척세대다.
그 시절, 안도전은 밭을 개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드리 나무가 우거졌으나 장아리는 큰 산 밑이라

해가 잘 들지 않아 큰나무가 없고 \”펜펜한 당이 넙직했다. ”
하지만 추위가 억세니 심는 작물이라고는 겨우 귀리, 피, 양재감자, 되팥이 고작이었다.
한 때 열 가구가 넘다가 일제시대를 지나고 6.25가 터지면서 뿔뿔이 흩어졌다.
끌대같던 탁씨네 다섯형제도 둘째는 일본놈들 밑에서 훈련받기 싫다며 목숨을 버렸고,

셋째와 넷째는 의용군에 끌려가고 자원입대해 여직 소식도 모른 채 난리통에 죽었니 하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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