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유배지 청령포와 장릉

단종유배지 청령포와 장릉

단종유배지 청령포와 장릉

단종유배지 청령포와 장릉

슬픈 사연이 깃든 역사의 현장

충절의 고장이란 이름이 붙게된 영월은 단종의 애환이 깃든 곳이다.

비운의 왕 단종과의 슬픈 인연으로 영월은 충절의 고향임을 자랑한다.

굽이굽이 소나기재를 타고 고을로 들어가는 초입에 붉은 홍살문이 세워진 것도 영월사람들의 그런 마음일 터.

단종이 승하한 후 그를 기리던 백성들이 토속신앙의 대상으로 받들어 모시기까지 했으니

그 죽음이 얼마나 애처로운 것이었는지 짐작이 간다.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쫓겨나 단종이 처음 유배된 곳은 육지 속의 외딴 섬 청령포였다.

서쪽은 66봉이 깎아지른 절벽을 이루고 나머지 3면은 서강의 시퍼런 물줄기가 감돌아 흐르는 천연의 감옥.

영월군수를 지냈던 신숙주가 유배지로 이곳을 천거했다고 한다.

그 험한 귀양지는 지금 천혜의 휴양지로 바뀌어 나룻배를 타고 건너온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청령포에 단종이 머물렀던 자취로는 단종이 한양을 그리워하며 쌓은 망향탑과 나이 어린 단종의 슬픈 사연을

보고 들었을 것이라 해서 영월 사람들이 觀音松(관음송)이라고 이름을 붙여준 소나무 한그루가 있다.

청령포에서 외로운 나날을 보내던 단종은 병자년(1456년) 홍수로 처소를 관풍헌으로 잠시 옮겼으나

금성대군의 단종복위운동이 탄로 나자 결국 사약을 받게 된다.

형집행자인 금부도사 왕방연이 차마 사약을 내놓지 못한 채 머뭇거리자 단종의 어소에서 시봉하던

복득이란 자가 공명심에 눈이 어두워 등 뒤에서 활시위로 목을 조여 죽였다고 한다.

세조는 시신을 강물에 버리게 했고 「만약 이를 거두는 자가 있으면 3족을 멸하리라」고 했다.

이러한 위험한 상황에서도 영월의 호장 엄홍도는 「옳은 일을 하다가 화를 입는 것을 어찌 두려워하랴」

라며 시신을 수습하였다고 하니 그곳이 바로 오늘날의 장릉이다.

이 무덤 자리는 창졸간에 물색됐음에도 불구하고 영험한 명당이라고 한다.

당시 엄홍도가 자신의 선산으로 단종의 영구를 메고 올라 가다가 노루가 누웠다가 간 자리만 눈이

없어 관을 내려놓고 잠깐 쉬었는데 영구가 그 자리에 딱 붙은채 떨어지지 않아 여기에 무덤을 썼다고 한다.
이형권(역사기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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