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열사

충열사

충열사

옛 김화읍 읍내리 천동 산록에 있던 충렬사는 병자호란 당시 김화에서 큰 전과를 올린 평안도 관찰사 홍명구와 평안도 병마절도사 유림장군을 모신 사당으로 조선효종 1년 김화현 백전읍 사람들이 3칸 규모의 사당을 건립하고 홍명구 충렬공의 제향을 받들었습니다.
효종 3년 임진(1652)에 본 사당이 충렬사로 사액되었다. 원장 이종하 도유사 이상휘를 위시 유림제현에 의해 충렬사가 중수되었습니다.
1940년 김화유림들의 합의로 충장공 유림장군을 충렬사에 추배하였고, 1950년 6.25동란으로 사우가 완전 소실되어, 1975년 9월 30일 충렬사 재건 추진위원장 박재연과 김화 유림제현 및 군민들의 찬조와 근남면 육단리 전수홀 소유 육단리 전(田) 245번지의 1,100평 희사로 그곳에 사우를 이전재건 제향을 거행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1997년 10월 25일 강원도 지방기념물 제 72 호 지정고시 되어 1998.7.29부터 12월초까지 충렬사 복원공사로 사당 (1동 8.29평), 내삼문(1동 3.24평),비보호각단청(1동 4평)을 복원하였습니다.

 

▒ 옛 김화읍 읍내리 천동 산록에 있던 충렬사는 병자호란 당시 김화에서 큰 전과를 올린 평안도 관찰사 홍명구와 평안도 병마절도사 유림장군을 모신 사당이다. 조선효종 1년때, 김화현 백전읍 사람들이 3칸 규모의 사당을 건립하고 홍명구 충렬공의 제사를 받들기 시작했다.

▒ 효종 3년 임진(1652)에 임금이 이름을 내려, 충렬사로 불리게 되었다. 이후, 원장 이종하, 도유사 이상휘를 비롯한 유림제현에 의해 충렬사가 새로 고쳐졌다.1940년 김화유림들의 합의로 충장공 유림장군을 충렬사에 추배하지만, 1950년 6.25동란으로 사당은 완전히 소실된다. 이에 따라, 1975년 9월 30일 충렬사 재건 추진위원장 박재연과 김화 유림제현 및 군민들의 재건 노력이 이어지고, 근남면 육단리 전수홀 소유 땅, 1,100평이 기증되어 그곳에 사당을 재건하고 제사를 받들어 현재에 이르게 된다.

▒ 1997년 10월 25일 강원도 지방기념물 제 72 호로 지정된 것을 계기로, 98.7.29부터 12월초까지 충렬사 복원공사를 실시해 사당 (1동 8.29평), 내삼문(1동 3.24평),비보호각단청(1동 4평)이 다시 살아났다.- 고려시대- 높이 6.4m- 화강석김화읍강원도 지방기념물 제72호. 평안도 관찰사 홍명구와 평안도 병마절도사 유림장군을 모신 사당. 조선효종 1년 김화현 백전읍 사람들이 3칸 규모의 사당을 건립하고 홍명구 충렬공의 제향을 받들었다.철원군청 관광문화과 : 033-450-5365  강원도철원군철원군- 서울 – 원주 – 철원행 버스 이용 – 서울 – 철원 – 김화행 버스 이용보물 제77호

답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