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다른 영월 책박물관

색다른 영월 책박물관

색다른 영월 책박물관

색다른 영월 책박물관
영월 책박물관 ( 박대헌 구영민씨 부부)

세상에는 참 남들이 보기엔 이해가 되지 않는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왜 이렇게 산골에 와서 파묻혀 의미없이 살아갈까? 이렇게 살기엔 너무 아까운 분들이다. 이런 분위기를 자아내는 분들이 있다.

바로 1999년 4월 국내 최초로 영월군 서면 광전리에 있는 폐교된 여촌분교를 활용해 책박물관을 운영하는 박대헌 구영민씨 부부다.

영월책박물관에서 만난 박대헌(50)씨가 꼭 그런 사람이었다. 5년 전 폐교된 분교에 평생 소원이던 책박물관을 세워놓고 그지없이

행복해했던 사람. 하지만 지금 그는 파산 직전에 있다.

서울서 세 시간 거리를, 그것도 심심산골로 책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이 흔치 않거니와, 고서(古書)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 있어야 이 박물관의 진가를 알아보는 탓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영월교육청에 매년 내야 하는 임대료 1000만원을 3년째 내지 못했다.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이달 말에는 폐교를 매입할 것인지,

아니면 떠날 것인지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답답한 건 위기를 피해갈 기회가 이미 몇 차례 있었다는 점이다.

“영월군청에서 폐교를 매입해 무상으로 임대해주겠다는 제의를 하더군요. 거절했어요. 그들은 우리가 구상하는 책마을의 마스터플랜에는 관심이 없거든요.

우리를 진정으로 돕고 싶다면 사람들 모두 떠나가는 이 산골마을을 전국에서 유일한, 그리고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책마을이 될 수 있게 지원하는 것입니다.”

‘똥고집’에다 이상주의자인 남편 때문에 가장 힘든 건 아내 구영민(43)씨다. “유행 한참 지난 양복을 입고 광화문 한복판에서 당당히 활보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

” 결혼했다는 그는, “데이트도 청계천 뒷골목 아니면 박물관 등지로만 다니더니 결국은 이 산골까지 와서 책먼지랑 씨름하며 살게 됐다”며 웃는다.

그래도 그는 박씨의 가장 든든한 지지자다. 1655∼1949년 서양에서 출간된 한반도 관련 단행본 287권을 소개한 1000쪽 분량의 ‘서양인이 본 조선’을

펴내 국내외 출판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일도 아내의 뒷바라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

영월로 가기 위해 서울서 잘나가던 고서점 ‘호산방’을 남편 혼자 일방적으로 정리했을 때도 그냥 웃었다.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요. 자기가 옳다고 믿고 마음먹은 건 하늘이 두 쪽 나도 하고야 마는 사람이라 헤어질 거 아니면 그냥 따르는 편이에요.”

두 아들 정완(17)이, 경민(14)이는 그런 아버지를 빼닮았다. 원주 과학고 2학년인 정완이는 의대 가라는 담임의 권고에도 순수 물리학도가

되겠다고 우기는 고집불통. 책 좋아하고 그림 좋아하는 경민이는 박물관 허드렛일을 도맡아서 한다.

두 아들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도 아버지다. “좋은 일 하시잖아요.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바르고 뜻 깊은 족적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오늘내일 하는 박물관 형편에 비춰보면 부부의 얼굴은 지극히 평화롭다. 허름한 관사에 살림살이는 나날이 궁색해지고 빚은 산더미처럼 늘어가는

데도 이들은 책갈피 하나, 초대장 한 장 만드는 데 지대한 공을 들인다.

“그게 사는 멋이고, 문화니까요.” 돈보다 사람이 좋다는 것도 이들 부부의 변함없는 철학이다.

덕분에 책박물관 운동장엔 책 구경, 자연 구경하러 길 떠나온 가족들이 줄을 잇는다. 이들의 형편을 누구보다 잘 아는 지인들은 주머니를 턴다.

서울대 전경수 교수, 북디자이너 정병규, 화가 김정 교수 등은 요즘 문닫기 직전의 책박물관을 회생시킨다고 다시 분주해졌다.

“왜 이렇게 힘들게 사느냐고들 물어요. 꿈 때문이죠. 돈과 골프와 멋진 전원주택을 짓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거, 그런 꿈이 아니에요.

버려진 폐교, 그래서 생기 없어진 마을에 도시로 떠난 사람들 다시 불러모으는 거지요. 그래서 꽃과 나비의 날갯짓, 그윽한 바람 소리, 묵은 책향기

맡게 해줄 건데, 어때요, 아름답지 않나요?”

영월 책박물관(관장 朴大憲)은 교실 2칸에 2개의 전시실을 마련해 희귀 고서적 등을 전시하고 있다. 朴관장이 서울에서 운영하던 호산방 서점도

교실 1칸에 옮겨 놓아 고서적과 전문서적을 판매하기도 한다.

‘아름다운 책’ 주제의 제1전시실에는 1922년에 발간된 「황야에서」(조선도서주식회사刊), 1941년 판 김동인의 「왕부의 낙조」등 근대 초창기

희귀 도서 100점을 전시하고 있다.

또 제2전시실에는 목판본 「동몽선습」과 윤석중의 동요집 「초생달」을 비롯해 조선시대부터 60년대까지의 어린이 교과서와 동화 동시집

만화 잡지 등 100점이 전시돼 고전의 향기를 잃지 않으려는 전국의 학계, 문인, 학부모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영월 동강의 푸르름과 호젓함을 만끽하고 단종의 애?㉯? 사연을 더듬으며 영월 책박물관을 둘러보는 시간은 혼자만이 느낄 수 있는 뿌듯한 쾌감을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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